인류문화학

매클루언 ‘나르시스 효과’와 SNS 시대의 자아, 몰입, 피로

visiblediary 2025. 10. 27. 08:30

매클루언의 ‘나르시스’는 인간이 감각과 신체를 매체로 확장하면서 그 확장에 마취되어 자신의 변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다. 현대 SNS는 이 메커니즘을 자아 구성, 몰입 루프, 사용 피로라는 연쇄로 증폭한다. 즉, 스스로 확장한 프로필과 피드에 매혹되어 자신을 타자처럼 소비하고, 이어지는 보상 구조에 끌려 시간과 주의를 잃은 뒤, 결국 감각의 균형이 무너진 피로로 귀결되는 것이다.

자아: 프로필로 확장된 나, 알고리즘의 거울

SNS에서 자아는 단순한 ‘나’가 아니라 선택과 편집을 통해 만들어진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나’다. 프로필, 셀피, 하이라이트, 짧은 문장과 해시태그는 복잡한 정체성을 단순한 지표와 서사로 압축한다. 이것이 매클루언이 말한 ‘확장’이다. 문제는 확장된 자아가 곧바로 ‘자기 마취’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숫자로 측정되는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다 보면, 내가 나를 인식하는 방식이 타인의 반응에 외주화 되고, 내면의 기준은 점차 희미해진다. 알고리즘은 이 과정을 ‘거울’처럼 강화한다. 과거 내가 반응한 콘텐츠와 유사한 것을 끊임없이 추천하며, 내 취향과 의견의 윤곽을 더 굵게 칠한다. 그 결과 자아는 더 선명해지는 듯 보이나, 사실은 더 얇아진다. 미세한 실패와 모순, 말문이 막히는 순간 같은 ‘두께’가 사라지고, 부드러운 표면만 남기 때문이다. 감각의 측면에서 보면, SNS는 시각·텍스트 중심으로 감각비율을 재조정한다. 촉각적 공명(대면의 온도, 시간의 기척)은 약화되고, 즉각적 가시성과 수치가 판단의 척도로 부상한다. 그래서 우리는 ‘보는 자’에서 ‘보이는 자’로 재배치된다. 이때 유용한 자아 위생은 목적을 앞세우는 것이다. 아카이브를 위한 기록과 과시를 위한 업로드를 구분하고, 공개·비공개 공간을 분리하며, 팔로워가 아닌 관계를 기준으로 피드를 설계한다. 댓글을 ‘반응’이 아니라 ‘대화’로 전환하고, 업로드 주기를 리듬으로 관리하면, 자기 확장이 자기 마취로 굳어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나르시스의 연못에서 벗어나려면, 거울을 보는 시간이 아니라 거울을 내려놓는 순간을 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몰입: 무한스크롤의 리듬과 보상, 루프의 문법

SNS 몰입은 흔히 ‘플로우’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간헐강화가 만드는 ‘컴펄전 루프’에 가깝다. 무한 스크롤, 예측 불가능한 보상 간격, 푸시 알림의 간섭은 도파민의 변동성을 키워 ‘조금만 더’라는 감각을 끝없이 유도한다. 짧은 영상은 정보의 단위와 전환 속도를 높여, 기억의 정착보다 즉시성의 흥분을 우선시한다. 시간은 잘게 부서지고, 주의는 얕은 수면처럼 쉽게 흔들리며, 선택의 피로는 ‘알고리즘에게 맡기기’로 귀결된다. 에코체임버에 갇힌 몰입은 몰입의 질을 떨어뜨린다. 익숙하고 쉬운 것에만 반응하는 루프 속에서 우리는 놀람보다 확신을 소비하고, 사유보다 스와이프의 리듬에 익숙해진다. 이를 덜어내려면 사용 맥락을 다시 짜야한다. 알림은 배치와 모드로 관리하고, 홈 화면에서 SNS 앱의 물리적 거리를 늘려 진입 마찰을 만든다. 소비와 제작의 비율을 1:1에 가깝게 설정하면, ‘보기만 하는’ 수동적 몰입을 ‘만들며 돌아보는’ 반성적 몰입으로 전환할 수 있다. 구독·팔로우 목록을 주기적으로 대청소해 의도한 주제의 ‘느린 피드’를 만들고, 롱폼 콘텐츠와 대화형 커뮤니티를 고정 루틴에 넣으면, 주의의 호흡이 길어진다. 결국 핵심은 리듬의 주도권이다. 내가 시간을 조각내는가, 아니면 조각난 시간에 내가 맞춰지는가. 매클루언식으로 말하면, 매체가 내 감각비율을 재편하기 전에 내가 사용할 감각의 균형표를 먼저 적어두는 일이다.

피로: 자기 마취 이후의 비용과 회복 디자인

나르시스의 종착지는 피로다. 처음에는 미세한 과부하로 시작한다. 잠들기 전 마지막 스크롤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비교는 동기 대신 불안을 남긴다. 피드의 매끈한 삶과 나의 일상의 거칠기가 부딪히며, ‘왜 나만 이런가’라는 왜곡이 커진다. 관계는 넓어졌지만 얕아지고, 공감은 반응 속도로 환원된다. 장시간 스크린 노출은 눈, 목, 손목의 통증으로 번지고, 업무·학습의 깊이는 산만함에 갉아먹힌다. 중요한 건, 이 피로가 단지 ‘많이 써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연결되는가’의 문제라는 점이다. 매클루언은 매체가 환경이라고 말한다. 환경은 배경이 아니라 습관과 언어, 기대를 만들어 우리의 사고를 형성한다. 따라서 회복은 해독처럼 단발로 해결되지 않는다. 리듬을 바꾸는 설계가 필요하다. 알림을 기본 끔으로 두고, 저녁 이후에는 블루라이트와 자극적 피드를 멀리한다. 주 1회 ‘무소셜 데이’를 정해 촉각·청각 중심 활동(산책, 종이책, 악기, 손작업)으로 감각비율을 재균형화한다. 대면 대화를 늘리고, 중요한 관계는 SNS 바깥의 채널로 격상한다. 팀이나 클래스 단위로는 ‘업무용 규칙’을 정해 반응 속도 경쟁을 억제하고, 피드 설계에서 롱폼·심층 대화를 우선순위에 둔다. 사용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도 바꿔야 한다. 체류시간이 아니라 ‘후회 없는 사용 시간’, ‘학습·관계의 깊이’, ‘오프라인 전이’ 같은 내적 지표를 기록하면, 피로의 감소가 선명해진다. 피로는 신호다. 나르시스적 자기 마취에서 깨어날 때가 왔다는, 감각을 다시 통합하라는.

SNS는 자아를 확장시키지만, 그 확장은 쉽게 자기 마취로 변하고 몰입 루프를 통해 피로를 누적시킨다. 오늘부터 피드 목적을 재정의하고, 알림과 리듬을 설계하며, 대면 대화와 롱폼 소비를 일정에 고정하라. 감각의 균형을 되찾는 작고 반복 가능한 변화가, 미디어의 이해를 삶의 회복으로 바꾼다.